Happy birthday to My father
Posted 2007/08/28 22:10, Filed under: In Australia/Brisbane내일은 아버지의 생신입니다.
남들처럼 크게 부모님 속 썩이면서 살지 않았다고 생각해왔지만, 알고보니 이제부터가 그 시작인것 같아 그저 마음 한 구석에서 죄송할따름입니다.
'아버님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고...'
뜬금없이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렸을때의 내 기억속에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재미있고, 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줄수 있는 최고의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점점 내가 청소년기를 겪어지면서 나도 과묵해지기 시작했고,
덩달아 아버지도 과묵해지시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지금 난 스물 다섯 어른이 되어 집에서는 필요한말 이외에는 말이 없는것이고.
친척들은 모두 경상도에 있다보니 이곳 강원도에 살면서부터 아버지에게는 친한 친구들이 없다.
이웃사촌이라 했던가. 이웃에서 알고 지낸 사람들은 많았지만, 유독 '강릉'에서 이사만 내 기억으로만 4번을 했으니...
친해질만 하면 이사를 하고...친해지만 하면 이사를 했으니...
가까이 두고 사귈만한 사람들이 적었으리라.
그나마 사업을 하시면서 알게된 사람들도 돈과 사업이 얽히면 무언가 깨름칙하고 완전한 친구가 되긴 어려웠으리라.
그래서 그런것일까. 우리 세 남매가 사춘기에 들기전까지는 모든 가족들이 그랬겠지만 특히나 우리 가족은 화목하고 재밌게 놀았던것 같다.
어차피 남들보다 한명이 많은 다섯 식구. 남들과 어울리기도 많이 했지만,
그저 가족들만 차를 타고 어디론가 여행을 간적이 꽤 되었으리라.
아버지 사업에 꼭 필요한 봉고차.
그때 그 시절의 봉고차는 정말 우리 가족에게 필수품 중에 하나였다.
평일에는 아버지 사업에 필요한것이었고, 주말만 되면 우릴 데리고 어디로든 놀러나갈수 있는 우리의 발과 같은 존재였으니.
꼭 우리 가족들 뿐만 아니더라도, 아버지는 이웃들과 아는 분들과 함께 꼭 아버지의 봉고차에 사람들을 관광차에 구겨 넣든 태우고선 어디로든 떠났다.
물론, 갈곳 많고 볼것 많고 할것 많은 강원도 안에서였지만,
그 옛날 봉고차에 노래방 기계를 장착한 차량은 흔치 않았으리라.
운전을 하시면서도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하시거나 당신이 마치 라디오 DJ가 된것처럼, 관광버스 분위기를 만드시는것을 좋아라 하셨다.
아버지는 월남전 참전 군인, 그것도 운전병 출신이라. 다른 것은 몰라도 운전에서 만큼은 항상 자신에 넘치셨고.
나도 내가 유일하게 누군가의 차 옆에 탔을때 아무런 긴장없이 졸수가 있는 베스트 드라이버가 바로 우리 아버지이다.
다른 친구나 아는 사람이 운전한다고 하면 옆에서 사이드 미러로 봐줘야 하고, 후진 주차를 할때면 뒤로 나와서 봐주어야 하지만.
아버지는 눈이 차 뒤에 붙은것처럼, 그 시절엔 지금 처런 후방 카메라도 없었는데도 귀신 같이 후진주차를 어찌나 그렇게 잘 하시는지.
또 하나 집안에 있는 모든 가전제품들(단, 컴퓨터 제외)이 고장이 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역시 아버지의 손만 거쳐가면 되었다.
물론 문제가 생기거나 고장이 나면 일차적으로 우리가 혼이 나긴 하지만 어떡해서든 고쳐오시곤 했었다.
아버지 당신께서 배우지 못한 설움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자,
열심히 일하신 당신께선 우리 세 남매에게 공부에 관한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수 있도록 했다.
아버지는 국민학교도 제대로 졸업을 하지 못하셨다.
철없던 나의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 학력을 조사하라고 할때마다 난 매번 거짓말로 써넣었다. -국졸- 그것도 친구들이 볼까봐 부끄러워 보여주지도 않고 묻지도 물어보지도 않았다.
아버지 세대에선 그게 당연한것인데. 나보다 아버지 연세가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다들 최소한 고졸이었는데...난 국민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아버지의 학력이 부끄러웠다.
철 없을 때의 내 모습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래도 그때 내 속으로 항상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그래도 우리 아버지는 니네 아버지들 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할줄 안다" 였다.
맞다. 아버지는 누구와 대화를 하셔도 막힘없이 자신의 할말을 할줄 아셨고, 어떤 분야의 지식도 알고 계신 분이었다. 누군가 어떤 생소한 분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도 대화가 되시는 분이었다.
전혀 그럴것 같지 않은 분이 이렇게 상식이 많고 관심있는 분야가 많다니...
어쩌면 지금의 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아마 아버지의 그것을 닮지 않았나 싶다.
내일이 생일이지만 아침에, 오전에 전화를 못 드릴것 같아 오늘 저녁에 전화를 드렸다. 늦은 시간 잠도 안 자고 왠 전화냐며...
아버지 생신이라 축하 전화 드리는거라고...
니 생일 제대로 챙기지도 못했는데 잘 해먹었냐고..
아버지 생신 축하드리려고 전화했다가 오히려 지난 내 생일 얘기만 꺼내시는 우리 아버지다.
군대 제대후 복학 하고 나서 불현듯 호주로 떠나겠다고 했을때, 아무런 반대 없이 흔쾌히 허락해주신 아버지.
남들처럼 살갑게, 부드럽게, 말을 돌려 할줄 모르시는 아버지.
하지만, 항상 제 자식 걱정하고, 당신 생신 축하하기 위해 전화한 아들에게 오히려 당신 아들 생일 챙겨주지 못함에 미안함을 표시하시는 아버지.
일주일에 한번 거는 안부전화도, 국제전화 비싸다며 자주 걸지 말라는 전형적인 경상도 싸나이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아버지.
부모님 생신에 아무것도 보내지 말라는 엄마의 말에, 그래도 혹시나 해서 건강약품 보냈더니 잘 받았다고 전화 해주신 아버지.
누가 뭐라 해도 저는 당신의 아들인가 봅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당신께서 좋아하시는 것인지, 싫어하시는것인지 조금씩 알아갈것 같네요. 이제서야 말이죠.
하지만 너무 늦은것인가요. 진작에 알았더라면 좋았을것을...
아버지, 당신의 생신만큼은 좋아하시는 음식, 좋아하는 동네 분들과 함께 좋은 시간 보내셨으면 합니다.
이미 오늘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외식을 하셨을테니 말이죠.
항상 지금처럼 건강하게 계셔주세요.
내년에 선물 한 보따리 들고 집에 들어갈께요.
그럼 안녕히 잘 계세요.
아버지, 생신 축하드립니다. ^^
남들처럼 크게 부모님 속 썩이면서 살지 않았다고 생각해왔지만, 알고보니 이제부터가 그 시작인것 같아 그저 마음 한 구석에서 죄송할따름입니다.
'아버님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고...'
뜬금없이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렸을때의 내 기억속에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재미있고, 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줄수 있는 최고의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점점 내가 청소년기를 겪어지면서 나도 과묵해지기 시작했고,
덩달아 아버지도 과묵해지시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지금 난 스물 다섯 어른이 되어 집에서는 필요한말 이외에는 말이 없는것이고.
친척들은 모두 경상도에 있다보니 이곳 강원도에 살면서부터 아버지에게는 친한 친구들이 없다.
이웃사촌이라 했던가. 이웃에서 알고 지낸 사람들은 많았지만, 유독 '강릉'에서 이사만 내 기억으로만 4번을 했으니...
친해질만 하면 이사를 하고...친해지만 하면 이사를 했으니...
가까이 두고 사귈만한 사람들이 적었으리라.
그나마 사업을 하시면서 알게된 사람들도 돈과 사업이 얽히면 무언가 깨름칙하고 완전한 친구가 되긴 어려웠으리라.
그래서 그런것일까. 우리 세 남매가 사춘기에 들기전까지는 모든 가족들이 그랬겠지만 특히나 우리 가족은 화목하고 재밌게 놀았던것 같다.
어차피 남들보다 한명이 많은 다섯 식구. 남들과 어울리기도 많이 했지만,
그저 가족들만 차를 타고 어디론가 여행을 간적이 꽤 되었으리라.
아버지 사업에 꼭 필요한 봉고차.
그때 그 시절의 봉고차는 정말 우리 가족에게 필수품 중에 하나였다.
평일에는 아버지 사업에 필요한것이었고, 주말만 되면 우릴 데리고 어디로든 놀러나갈수 있는 우리의 발과 같은 존재였으니.
꼭 우리 가족들 뿐만 아니더라도, 아버지는 이웃들과 아는 분들과 함께 꼭 아버지의 봉고차에 사람들을 관광차에 구겨 넣든 태우고선 어디로든 떠났다.
물론, 갈곳 많고 볼것 많고 할것 많은 강원도 안에서였지만,
그 옛날 봉고차에 노래방 기계를 장착한 차량은 흔치 않았으리라.
운전을 하시면서도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하시거나 당신이 마치 라디오 DJ가 된것처럼, 관광버스 분위기를 만드시는것을 좋아라 하셨다.
아버지는 월남전 참전 군인, 그것도 운전병 출신이라. 다른 것은 몰라도 운전에서 만큼은 항상 자신에 넘치셨고.
나도 내가 유일하게 누군가의 차 옆에 탔을때 아무런 긴장없이 졸수가 있는 베스트 드라이버가 바로 우리 아버지이다.
다른 친구나 아는 사람이 운전한다고 하면 옆에서 사이드 미러로 봐줘야 하고, 후진 주차를 할때면 뒤로 나와서 봐주어야 하지만.
아버지는 눈이 차 뒤에 붙은것처럼, 그 시절엔 지금 처런 후방 카메라도 없었는데도 귀신 같이 후진주차를 어찌나 그렇게 잘 하시는지.
또 하나 집안에 있는 모든 가전제품들(단, 컴퓨터 제외)이 고장이 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역시 아버지의 손만 거쳐가면 되었다.
물론 문제가 생기거나 고장이 나면 일차적으로 우리가 혼이 나긴 하지만 어떡해서든 고쳐오시곤 했었다.
아버지 당신께서 배우지 못한 설움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자,
열심히 일하신 당신께선 우리 세 남매에게 공부에 관한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수 있도록 했다.
아버지는 국민학교도 제대로 졸업을 하지 못하셨다.
철없던 나의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 학력을 조사하라고 할때마다 난 매번 거짓말로 써넣었다. -국졸- 그것도 친구들이 볼까봐 부끄러워 보여주지도 않고 묻지도 물어보지도 않았다.
아버지 세대에선 그게 당연한것인데. 나보다 아버지 연세가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다들 최소한 고졸이었는데...난 국민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아버지의 학력이 부끄러웠다.
철 없을 때의 내 모습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래도 그때 내 속으로 항상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그래도 우리 아버지는 니네 아버지들 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할줄 안다" 였다.
맞다. 아버지는 누구와 대화를 하셔도 막힘없이 자신의 할말을 할줄 아셨고, 어떤 분야의 지식도 알고 계신 분이었다. 누군가 어떤 생소한 분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도 대화가 되시는 분이었다.
전혀 그럴것 같지 않은 분이 이렇게 상식이 많고 관심있는 분야가 많다니...
어쩌면 지금의 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아마 아버지의 그것을 닮지 않았나 싶다.
내일이 생일이지만 아침에, 오전에 전화를 못 드릴것 같아 오늘 저녁에 전화를 드렸다. 늦은 시간 잠도 안 자고 왠 전화냐며...
아버지 생신이라 축하 전화 드리는거라고...
니 생일 제대로 챙기지도 못했는데 잘 해먹었냐고..
아버지 생신 축하드리려고 전화했다가 오히려 지난 내 생일 얘기만 꺼내시는 우리 아버지다.
군대 제대후 복학 하고 나서 불현듯 호주로 떠나겠다고 했을때, 아무런 반대 없이 흔쾌히 허락해주신 아버지.
남들처럼 살갑게, 부드럽게, 말을 돌려 할줄 모르시는 아버지.
하지만, 항상 제 자식 걱정하고, 당신 생신 축하하기 위해 전화한 아들에게 오히려 당신 아들 생일 챙겨주지 못함에 미안함을 표시하시는 아버지.
일주일에 한번 거는 안부전화도, 국제전화 비싸다며 자주 걸지 말라는 전형적인 경상도 싸나이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아버지.
부모님 생신에 아무것도 보내지 말라는 엄마의 말에, 그래도 혹시나 해서 건강약품 보냈더니 잘 받았다고 전화 해주신 아버지.
누가 뭐라 해도 저는 당신의 아들인가 봅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당신께서 좋아하시는 것인지, 싫어하시는것인지 조금씩 알아갈것 같네요. 이제서야 말이죠.
하지만 너무 늦은것인가요. 진작에 알았더라면 좋았을것을...
아버지, 당신의 생신만큼은 좋아하시는 음식, 좋아하는 동네 분들과 함께 좋은 시간 보내셨으면 합니다.
이미 오늘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외식을 하셨을테니 말이죠.
항상 지금처럼 건강하게 계셔주세요.
내년에 선물 한 보따리 들고 집에 들어갈께요.
그럼 안녕히 잘 계세요.
아버지, 생신 축하드립니다. ^^
Response :
0 Trackback
,
2 Comments
Trackback URL : http://chulyun.com/trackback/85
-
oops. i feel like crying because of your writing. hmm are you getting steel???klkk철좀들긴하니?z
-
I've already gotten steel.k k.
-
